새벽 산책으로 여는 돌로미티 트레킹
알프스 돌로미티 살이 나흘째. 산장 생활은 단조로워서 좋다. 전기 공급이 끊기는 밤 10시. 2,300미터의 아우론조는 깊고 고요한 시간으로 들어간다. 하늘 반 별 반으로 채워진 밤하늘과 우람한 산군들이 마치 이탈리아 알피니(Alpini)처럼 아우론조의 밤을 지킨다.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알람이 없어도 자연스레 잠에서 깬다.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포근하게 감기는 이불을 돌돌 말고 누운 채 고개만 살짝 치켜 올려 창 너머의 돌로미티 산군들을 만난다. 세상에 이보다 호사스러운 아침이 또 있을까.
아우론조 산장 방에서 본 크리스탈로 산 일출
잠이 든 것도 깬 것도 아닌 말랑말랑한 상태로 새벽을 만끽한다. 하늘 색이 바뀌고 멀리 크리스탈로 산이 점점 발그레 물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.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.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이불을 걷어 내고 자켓과 카메라를 챙겨 나간다. 산장 1층은 오늘도 어김없이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로 가득하다. 매일 새벽 산장에서 굽는 크로와상 냄새는 세상 어떤 향기보다 달콤하다. 빵 냄새, 황금빛 일출, 포근한 운해. 이런 아침을 누리는 이 시간이야 말로 내가 돌로미티 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.
새벽 일출
알프스의 한가로운 아침 풍경
산장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 크리스탈로 산은 더 붉어졌고 트리치메를 마주하고 있는 돌로미티 최고의 침봉인 칸디니 디 미주리나 (Cadini di Misurina) 산군 또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.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 같은 느낌이 드는 칸디니 디 미주리나 (Cadini di Misurina) 산군은 뾰족한 침봉 군락지다. 주차장 캠핑카 에서 밤을 보낸 캠퍼들, 산장 사람들, 자전거를 타고 지금 막 아우론조에 도착한 사람들까지 새벽 산책을 나선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. 나도 빠질 수 없지. 알프스 초원의 소들이 목에 달린 방울 소리를 내며 아침을 먹고 있는 곳을 피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돌로미티의 새벽을 즐긴다.